[서평]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

[ 읽게 된 동기 ]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 스스로의 노력. 최근 TV프로그램 [알쓸신잡] 으로 더욱 친근해진 유시민 작가의경제학을 보다 쉽게 쓴 책이라 하여 선택!

 

[ 한줄평 ]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경제학의 대략적인 대서사시.

 

[ 서평 ]


 

아아. 이 책을 다 읽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몰랐다.

굉장히 흥미롭게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턱턱 막히는 부분들이 있었다. 또한, 리디북스 페이퍼 라이트로 출퇴근시간에 주로 읽었더니, 역시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이런류의 다소 깊이가 있는 책은 역시 큰 화면 또는 잘 편집된 종이책으로 읽는게 좋겠다.

 

헌데, 이 책을 다 읽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이 책을 리디북스에서 10년 대여로 빌렸었고, 그 가격이 무려 3,000원… 세상에 이런 책을 고작 3,000원에 읽었단 말인가? 오늘 카페에서 6,000원 짜리 아이스 로열 밀크티 라지사이즈 를 마셨기에…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리디북스 결제 내역>

 

경제학 석사 유시민 작가

 

내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더 굳어진 유시민은 현재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편안히 다가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 내에서는 유시민 작가로 불린다. 사실 유시민에 대해서 잘 몰랐기에 고작 ‘책 몇권’ 냈다고 작가야? 했더니만… 이 사람 지금까지 낸 책만 72권이다… ㅋㅋㅋ

 

<네이버 검색, 72권의 책을 쓴 유시민 작가>

 

네이버 인물 검색에서는 정당인, 전 장관이라고 나오는데, ‘작가’ 라는 타이틀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만 하다.

또한, 정치 했다고 경제학 책을 써?! 했던 내게 정말 몹시도… 부끄러웠다. 유시민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를 졸업한 뒤 독일 마인츠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졸업했다.

이 책을 다 읽고, 이 책의 서평을 지금 쓰면서 다시 유시민의 이력과 저술 활동에 대해서 검색해봤다. 하하… 내가 방금 읽은 이 책은 무려 1992년에 쓰여진 책이다. 그 뒤로도 이 책을 조금씩 개정했던 것 같은데, 머릿글은 그대로 둔 것 같다.

유시민은 머릿글에서 이런 글을 적어뒀다.

 

만약 누군가가 경제학이라는 거대한 숲을 조망하면서 하나하나 이론을 배우도록 이끌어 주었다면 나는 훨씬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학이라는 거대한 숲을 보여주고자 했던게 이 책의 목표였고, 유시민은 내게 있어 그 목표를 철저히 달성했다. 나는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7년째 개발자로 일하며 ‘경제’ 에 대해 무지하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정도는 들어봤지만, 칼 마르스크 정도는 들어봤지만 이들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들이 어떠한 사상을 만들었고 그 사상들이 현재 어떠한 결과를 미쳤는지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아니, 영향을 미쳤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딱히 관심도 없었다.

헌데 이 책을 다 읽은 뒤의 지금은 우선 ‘경제학’ 이라는 학문에 흥미가 생겼다.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일단 내 삶의 직접적인 부분을 보자면, 지난해 독립을 선언하고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만들며 ‘돈을 벌지 못해’ 무척이나 고통받았다. 도대체 돈이라는게 뭐길래 내게 이토록 고통을 주는가? 돈이 그렇게 중요한가? 따위의 질문에 이제는 스스로 답변할 수 있다.

돈은 중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며 ‘생산과 소비’ 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한명의 개발자로써 만들어야 하는 것을 만들고, 월급을 받아 살아왔다. 한 사람 몫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다만, 스스로가 한 사람으로써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보다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없었는지 다시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시장’ 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늘 단순 ‘생산’ 만을 해댔다.

 

아담 스미드 이래 모든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강조한 것처럼 생산의 목적은 소비이다.

 

생산과 소비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인간의 활동은 생산과 소비 두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경제학은 이러한 인간의 활동을 연구하는데서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열심히 일하고 아껴쓴다고 해서 풍요로운 삶을 사는 시대는 없다. 인간은 국가를 이뤄 살아가고, 국가는 살기 위해 생산과 소비를 통제한다. 무조건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요, 무조건 아껴서 소비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헌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자리일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세상이 만들어져있다. 복잡하게 꼬아 놓은 각종 법규들, 보이지 않는 계급. 안다고 해서 가질 수 없는 것들과 가진다고 해서 꼭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묘한 세상.

도대체 왜 우리네 사회가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그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고, 현재의 리더들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등. 그야말로 인류 경제사의 대서사시를 설명한다.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리카도… 이게 다 뭐야…

 

대중들에게 경제학은 특히나 어려운 학문으로 알려져있다. 경제를 모르는 공학도로써 나 또한 그랬다.

헌데, 사회를 경험하고 보다 나은 삶을 꿈꾸다 보면 ‘돈’ 은 늘 더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많은 동료들은 ‘Two Job’ 을 고민하기도 하고, 실제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로또를 사기도 하고, 로또를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꾸준히 연금복권을 사며 꿈을 꾸는 사람도 있고, 미래를 위해 버는 것의 대부분을 저축하며 착실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가난한 노동자는 속된 표현으로 하루살이처럼 산다. 이들은 눈앞의 궁핍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는 일이 없다. 저축할 기회가 있어도 대부분 이를 외면하고 눈앞의 필수품 이외에는 전부 술집에 가서 마셔 버린다.

 

이는 수백년에 걸쳐 지배계층이 노동자들을 그렇게 만들어왔기 때문도 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년들, 그러니까 20-40 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기 위해서, 혹은 일을 해서 늘 바쁘다. 그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전과 달리 저축을 한다고 해도 전혀 달라지는건 없다. 월급 100만원을 저축한다 해도, 그 100만원의 이자는 고작 2% 연 2만원이다. 이런식으로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배계층과 노동자 계층은 수백년에 걸쳐 큰 차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그렇다는 것은 최근 정치 뉴스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계층 사다리가 막혀갈수록 노동자 계층(직장인) 은 그저 지배계층(부자, 재벌) 을 그저 ‘혐오’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게 된다. 안타깝지만 그래봤자 바뀌는게 하나도 없더라고…

 

칼 마르크스는 그 잔칫상이 사실은 자연의 여신이 내린 하사품이 아니라 가난한 세계로부터 착취해 간 부(富)로 차린 것이라고 가르쳤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칼 마르크스’ 에 환호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터넷’ 도 없던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싶다. 헌데, 이러한 사상을 주입하고 사람들을 움직였다니. 그 움직임이 국가를 무너뜨리고, 전 세계를 주물렀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담 스미스를 시작으로 소위 천재들은 경제를 연구하고, 사상을 만들어 군중을 이끌었다. 이 사상에 따라 누군가는 가난을 극복할 수도 있었고, 가진 것을 잃기도 했다. 결국 모두를 위한 이론은 없었고, 그렇게 정치가 뗄 수는 없었다.

기존의 기득권 층은 그들을 위한 이론을 펴는 이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줬다. 아마도 지금처럼 그들을 위한 이론을 만들어 대우를 받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그들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망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유시민은 그러한 천재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각 인물들의 사상과 이론을 다소 간단히 설명한다.

 

만약 칼 마르크스라는 인간과 『자본론』이라는 저작이 없었더라면 20세기의 세계는 우리가 실제 겪어 온 세계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의 사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인류는 계층의 사다리가 끊겨 더이상 넘볼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수많은 천재들과 그 천재들에 공감한 용기있는 자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자신들을 희생했던 수많은 이름없는 자들 덕분일 것이다.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간다. 도대체 왜 수 많은 청년들이 정부와 맞서 싸웠는지. 화약병을 만들어 던지고, 죽창과 싸워댔는지. 그들은 아마도 역사속 수많은 천재들을 보며, 자신들도 그 역사속 인물로 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마음속 뜨거운 열정과 머릿속 차가운 이념에 던졌을지도 모른다. 더 나은 사회,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한 사회, 스스로가 꿈꾸는 사회.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읽으며, ‘유시민’ 이란 사람이 만들어졌나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들과 싸웠던 경제학자들.

 

나는 현재 을지로입구역 근처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 퇴근 중에 높이 올라선 건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속 마음이 새어나왔다. ‘아, 저~기 저 쪼만한 건물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이라도 ‘건물주’ 가 되는 상상을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 ‘에잇, 더러워서 때려친다!!’ 라고 생각하곤 담배를 한 대 피거나, 달달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들어와 ‘네~ 과장님 제가 할게요~!’ 라고 소리치는게 우리네 현대판 노예들이 아닌가?

 

스미드나 리카도는 노동이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부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산물이며 빈곤은 나태의 결과이다.

 

아마도 아담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카도의 이론을 들으면, 우리네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힘든게 스스로가 ‘나태’ 해서라니… 우리가 나태해서 인가? 매일 아침 일어나 졸린 눈 비비며 씻고 출근한다. 점심보다 잠을 택하는 직장인도 있고, 늘상 야근에 시달린다.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나태하길래 이토록 돈에 허덕이는건가?

이 책에 따르면 과거 경제학자들 또한 ‘자본가’ 들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경제학자들은 알았던 것이다. 계속 이러한 구조가 이어진다면,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이고 이를 뒤바꿀 가능성이 전혀 없어질 것을. 그들은 일 하지 않고 더욱 부자가 되었고, 일 하는 자들은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아니 이해할 시간 조차 갖지 못한채 그저 묵묵히 일만 할 뿐이었다.

 

조지는 정치경제학과 세계를 이 비극적인 운명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흔히 ‘토지가치세’ 또는 ‘단일토지세’(single tax)라고 하는 조세제도이다. 지대를 백 퍼센트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몇몇 인류를 위한 천재들은 이처럼 자본가들과 맞서 싸웠다. 최근에는 이러한 격차가 더욱 벌어져, 몇몇 부호들이 세계의 부의 몇십퍼센트나 되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빌게이츠, 주커버그, 제프 베조스,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건물주’ 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다. 결국 그 구조를 깨지 못하자 ‘부동산 투기’ 등의 악효과로 이어지는 등. 구조를 바꾸기 보다는 그 구조에 편승하려는 시도들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 결국 이러한 양극화는 지속되며, 더욱 깊어져만 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해 시한부의 삶을 선고하고 만인의 행복과 문명의 진보를 위해 고질병에 걸린 환자를 하루빨리 사망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인즈는 질병의 원인을 오진한 경제학자들을 나무라면서 간단한 치료약만 있으면 이 체제가 영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사회는 어떤 식으로 변화할까? 이 엄청난 문제점들을 읽어가며, 나는 굉장한 흥미를 느낌과 동시에 도대체 지난 6년간의 사회생활에서 나는 뭘 배웠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30년간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대체 뭘 느낀것이며 심지어 동시대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들 조차 눈감고 쳐다만 본 꼴이니… 어찌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을까?

헌데, 그래서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과거처럼 시위를 벌이고 세상을 바꿔야 하는가? 아니면, 일단 그들의 쪽으로 편승해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가? 편승은 가능한가? 편승하면 세상을 바꾸고 싶을까? 바꾸지 못하면 계속 이대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삶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

그렇다면, 내 존재의 이유는 뭘까?

 

 

경제학은 돈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려 했다. 나는 하고 싶은게 많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 것 같더라.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한다. 근데 직장 생활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 이게 뭔가?!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이러한 루프에 빠져 일단, 눈 앞의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세월을 보낸다. 이러나 저러나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학을 몰라서 돈을 못벌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경제 관련 도서를 세 권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돈을 더 못벌 것 같다. 단순히 돈을 좀 더 번다고 해서 좀 더 행복할 것 같지도 않고, 뭔가 거대한 것을 건드린 것 같아 좀 두렵기도 하다.

무엇보다 경제학이 단순히 ‘돈’ 을 벌기 위한 학문이 아니었다는게 충격적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경제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연구한 사람들이 아니다. 도대체 왜 사회가 이렇게 구성되는지, 왜 누군가는 행복하고 누군가는 불행한지.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지. 행복한 자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 행복할 수 있던 것은 아닌지. 이것이 신의 섭리인지, 아니면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돈의 흐름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돈’ 이 핵심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추측하게 된 이 책.

마치 숨바꼭질 중에 대놓고 숨어있던 눈 앞의 누군가를 발견한 듯한 느낌을 준 이 책.

 

경제학이라는 거대한 곳에 새롭게 나를 초대해준 이 책.

그래, 이제 경제학을 공부할 준비가 된 것 같다.

 

 

[ 인상 깊은 문구 ]


  • 인구법칙은 중학교 수준의 사회교과서에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맬더스 자신의 설명은 이러했다.
  • 가난한 노동자는 속된 표현으로 하루살이처럼 산다. 이들은 눈앞의 궁핍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는 일이 없다. 저축할 기회가 있어도 대부분 이를 외면하고 눈앞의 필수품 이외에는 전부 술집에 가서 마셔 버린다.
  • 아담 스미드가 “철학자와 지게꾼의 차이는 마스티프 개와 그레이하운드 개의 차이의 반도 안 된다”, “인간의 타고난 재능은 모두 비슷하지만 교육과 환경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 것과 비교해 보면 부자들에게 맬더스의 사상이 갖는 의의는 대단한 것이다.
  •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너무 많은 상품이 생산되어,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상품이 생산됨으로써 수요와 공급 사이에 크나큰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자본가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자본이 남아돌게 되어 극심한 불황이 닥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공급과잉에 의한 공황이다.
  • 일시적으로 노동 수요가 공급을 능가해서 노동의 시장가격이 자연가격보다 높아지면 노동자들은 자녀를 더 많이 낳아 노동 공급이 늘어난다. 그러면 노동의 시장가격은 다시 자연가격 이하로 떨어진다. 다음에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임금은 늘 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비용수준을 맴돌게 된다.
  • 스미드의 이론은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숙련된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사이의 생산량의 차이이며, 같은 숙련도일지라도 값비싸고 효율적인 기계를 가지고 일하는 노동자는 그렇지 못한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생산물을 생산한다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두 번째의 문제는 희귀한 조각이나 그림, 고대의 동전, 특수한 품질의 포도주 등이 그것을 생산하는 데 투여된 노동량과는 전혀 무관하게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동일한 노동으로 더 많은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비옥한 토지나 우수한 기계는 그 자체가 원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과거 노동의 산물이므로 모든 생산물의 가치는 종국적으로 노동량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 스미드나 리카도는 노동이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부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산물이며 빈곤은 나태의 결과이다.
  •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쾌락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두고 ‘속물’이라고 부른다. 칼 마르크스가 벤담을 “현대적 속물을 정상적 인간과 동일시한 속물주의의 시조”라고 비아냥거린 것은 이 때문이다.
  • “노동 없이는 어떤 부도 있을 수 없다.” 노동은 부를 구별 짓는 속성이다. 자연의 작용은 결코 부를 창조하지 않는다.
  • 호지스킨에 의하면 모든 도구와 기계는 노동의 산물이며, 또한 노동이 닿지 않고는 스스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 프루동은 “모든 재산은 도둑질한 것이다”는 유명한 슬로건 아래 그때까지 존재해 온 모든 사회를 저주했다.
  • 가장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항상’ 그 문제를 가장 훌륭하게 판단하는 것은 아니며 또 유능한 판단자도 아니다.
  • 만약 칼 마르크스라는 인간과 『자본론』이라는 저작이 없었더라면 20세기의 세계는 우리가 실제 겪어 온 세계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런 경우 노동자는 12시간을 일하고 6시간 동안의 생산물을 대가로 받는 셈이다. 여기서 속임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만큼 보수를 받았다. 그러면 나머지 6시간의 노동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이것을 ‘잉여노동’이라고 하고, 이 잉여노동에 의해 생산된 물질적 부를 ‘잉여가치’라고 했다. 이윤이란 ‘잉여가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잉여가치는 누가 가지는가? 자본가의 소유가 된다. 무엇 때문에? 그가 생산수단, 즉 자본의 법률적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그 악명 높은 ‘잉여가치설’의 개요이다.
  • 자본은 마치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계속해서 축적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는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를 희생시킴으로써 성취된다.
  • 모든 사물은 그 내부에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대립과 투쟁을 통해 새로운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 빵과 감자만 먹고 살다시피 하면서 근근이 연명한 마르크스는 그 와중에도 『자본론』집필에 열정을 쏟았다. 이 같은 생활은 약 7년간 계속되었는데 1852년 마르크스의 집에 잠입한 프러시아 경찰의 정보원은 그의 가정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귀중한 보고서를 남겼다.
  • 농노제도와 신분제도에 의해 유지된 중세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인 토지귀족들, 그리고 봉건왕조가 부여한 각종의 특권과 식민지에서의 약탈을 통해 재산을 모은 자들이 최초의 자본가계급을 형성했다.
  • 마르크스는 천재인 동시에 지독한 노력가에다 병적인 완전주의자였다. 『자본론』제1권의 저술에 15년이란 긴 세월이 소요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 1870년대에 독점자본주의의 출현을 예고한다는 것은 마치 오늘날의 시점에서 향후 50년 이내에 미국이나 일본의 자본주의가 소기업체제로 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파격적인 예언이었다.
  • 칼 마르크스는 그 잔칫상이 사실은 자연의 여신이 내린 하사품이 아니라 가난한 세계로부터 착취해 간 부(富)로 차린 것이라고 가르쳤다.
  • 오늘날 사람들로 하여금 경제학을 지독하게 난해한 학문으로 보고 그 신비한 비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제학자들을 외경스런 마음으로 쳐다보게 만든 것은 바로 신고전파의 ‘공로’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학적 묘사의 정확성과 아름다움에 도취된 나머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렸다.
  • 이처럼 진보와 함께 빈곤이 따라오는 현상은 우리 시대의 거대한 수수께끼이다.
  • 조지는 정치경제학과 세계를 이 비극적인 운명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흔히 ‘토지가치세’ 또는 ‘단일토지세’(single tax)라고 하는 조세제도이다. 지대를 백 퍼센트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겠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에 ‘헨리조지협회’라는 단체가 조직되어 있다. 이 협회의 한국 지부가 조직된 것은 1984년이다
  • 독점은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는 억만장자들을 배출했다. 록펠러, 카네기, 모건, 밴더빌트, 포드 등의 유명한 부자들은 모두 그러한 법인기업과 독점체의 지배자들이었다
  • 그러나 자기 손으로 레일을 제작한 공장노동자, 레일을 판 건설노동자, 열차를 운행한 운수노동자, 그리고 비싼 요금을 물면서 농산물을 탁송한 농민들은 결코 철도 덕분에 부자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 산업분야에서 똑같이 일어났다.
  • 빈민과 달리 부자에 대한 연구는 쉽지가 않다. 가난한 사람의 생활은 언제나 가장 손쉬운 사회조사의 대상이다. 몇 푼 안 되는 선물만 준비하면 조사요원은 면접조사의 대상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그들 일상생활을 가장 시시콜콜하게 알아낼 수 있다. 그리나 부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신성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범죄행위로 간주된다.
  • 베블렌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제도적 환경’이다. 사람들은 모두 특정한 제도 아래에서 생활하는데 그 제도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는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낙오한다.
  • 오늘날 사람들이 단지 자기의 부유함을 나타내기 위해 쓸데없는 고가품을 사들이는 이웃을 볼 때 ‘과시적 소비’라는 빈정거림을 보내게 된 것은 바로 베블렌의 공로이다.
  • 그는 본의 아니게 1899년의 첫 저서 『유한계급론』으로 대학당국이 만족할 만큼 시카고대학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미국의 독서계에 일대 충격을 일으켜 당시 지식인 사회의 필독서가 되었던 것이다.
  •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나 힘겨운 일상생활에 모든 힘을 빼앗기는 사람은 내일 이후의 일을 생각할 만큼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이것은 아주 부유한 사람이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품을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이다.
  • 그런데 영국 상인들만은 서약서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무역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응징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1840년의 이른바 ‘아편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영국에 홍콩을 떼어 주고 배상금까지 치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 홉슨은 저축을 비난함으로써 결국 부자들이 부유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근검’이라는 자랑거리를 모욕했다.
  • 그래서 오늘날의 강대국들은 훨씬 더 세련되고 문명화된 방식으로 옛 식민지의 나라들을 다루고 있다. 군대의 총칼과 가혹한 법률 대신 우세한 경제력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 빈곤과 실업과 혼란에 넌덜머리가 난 독일 국민은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에게 정권을 맡겨 버렸다. 나치정권은 1차 대전의 패배를 설욕하고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재무장을 시작했다. 세계사는 다시 한 번 광적인 전쟁을 향해 행진하고 있었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해 시한부의 삶을 선고하고 만인의 행복과 문명의 진보를 위해 고질병에 걸린 환자를 하루빨리 사망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인즈는 질병의 원인을 오진한 경제학자들을 나무라면서 간단한 치료약만 있으면 이 체제가 영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가장 극심한 피해를 당한 미국의 경우 1928년에 8백50억 달러이던 국민총생산이 1932년에는 3백7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성인 남자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실업자였다
  • 대공황이 몰고 온 혼란과 고통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이번에는 그들의 경제학이 쓸모없는 것으로 무시당하는 벌을 받았다.
  • 사람들은 자기 소득의 일부를 소비에 지출하고 나머지를 저축한다. 케인즈는 사람들이 소득을 소비에 지출하는 정도를 ‘소비성향’이라고 했다. 저축의 정도는 물론 ‘저축성향’이다. 그런데 소비성향은 이자율이 아니라 소득의 크기에 좌우된다.
  • 역시 1933년에 집권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도 케인즈의 처방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는 ‘뉴딜’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개입정책을 사용했다.
  • 이런 점에서 볼 때 독일과 미국 모두에게 전쟁은 불황 탈출의 비상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케인즈의 이론은 20세기 후반 들어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고 있다.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정부가 대자본가와 군부와 보수적인 정치인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현실을 중시하여 케인즈 경제학이 군사경제를 조장했다고 비난한다.
  •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 경제학자들로부터 그토록 큰 모욕과 조소를 받은 ‘줄서기’가 출현했다. 이것이 ‘부족한 재화’와 인간의 ‘무한한 욕망’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주의적 방법이었다.
  •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아무래도 빈둥거리는 쪽을 택하기 쉬운 것이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적당히 일하고 술이나 퍼마시는 무기력한 생활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 1978년의 경우 전체 농지 면적의 3%도 안 되는 텃밭에서 생산된 감자와 야채와 쇠고기의 양은 각각 소련 전체 생산량의 61%, 29%, 34%를 차지했다.
  • 사회주의는 이것과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그의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다.” 이것이 사회주의의 기준이다.
  • 아담 스미드 이래 모든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강조한 것처럼 생산의 목적은 소비이다.
  • ‘가격’이 재화의 사회적 ‘가치’와 동떨어진 존재로 되면서 기업 경영도 심각한 악영향을 받았다. 왜냐하면 생산의 효율성을 측정할 기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려면 자본과 자본가계급이 있어야 한다.
  • 리스트의 말대로 ‘세계연합’과 공정한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한 자유무역은 극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먼 이상에 불과하다.
  • 제3세계가 그들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개발할 수 있는 산업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경공업이나 위험스런 공해산업뿐이다. 제3세계는 신(新)제국주의 나라들이 꼭대기에 앉는 국제적 분업체계의 맨 밑바닥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낮고 위험과 부작용이 가장 많이 따르는 산업을 담당하게 된다.
  • 앨빈 토플러에 의하면 ‘제3의 물결’ 문명에서는 전통적인 생산요소인 토지, 노동, 원료와 자본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정보와 지식의 교환이 부를 창출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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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Domingo

오세용 Domingo

글쓰는 감성개발자 오세용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